sounds 2008. 12. 6. 08:30

매몰과 침잠...그리고 일탈의 순간에 대한 경험...(20070128)

매몰과 침잠...그리고 일탈의 순간에 대한 경험... | Moment_Breathhold  

http://blog.naver.com/myidcat/70013623527
2007-01-28 01:45:24


02년이었던가 .. 아님 01년이었던가.....그날은 몹시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부천으로 두달간 파견을 가게 되는 바람에, 늘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까진 용산역으로 가서 국철을 타고 출근했더랬지요. (7시 반까진 회의실에 당도해야 당연한 시절이었으니까요) 

하필 그날은 저녁에 치과도 가야했는 데...바쁜 일정을 쪼개고 윗분들께 사정사정해서 어렵게 서둘러 퇴근하여, 갈아갈아 타고 선릉으로 가서 다니던 치과 진료를 받고나니 참 어둑어둑 한 저녁이 되었더랬어요.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서 내린 후, 집으로 한방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안그래도 파견간 곳이 새로이 열린 곳이라 하루종일 미친듯이 일했던 기억밖에 없고, off날엔 그냥 집으로 돌아와도 저녁 8시반에나 들어오면 빨리 들어왔다고 좋아라 했던 시기였는지라(하여간 운이 매우 좋은날이 한시간 반 걸렸죠) 더없이 피곤하고 몸이 너무 지쳐, 사는 게 저절로 서글퍼지는 시간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예 저는 몸이 너무 지칠 때가 가장 서럽고 서글픕니다.)

강남역이 저녁에는, 평일에도 얼마나 번잡하고 시끄러운지...많은 분들이 아실겁니다. 게다가 그때는 늦여름이었던 것 같아요. 바글바글했더랬습니다.

하냥 멍~해져서 버스에 올라탔는 데...

버스 기사 아저씨께서 선택하고 계셨던 음악? 또는 라디오 채널은 참으로 기묘하게도 클래식 채널이었습니다. 시끄러운 강남역 분위기와 참 기묘하게도 안어울리더군요. 허헛!

… 

한때 저의 중고딩 시절은 클래식에도 엄청나게 매몰되었었던 적도 있었더랬습니다. 그 클래식 음악들을 대충 흘려 들으며 나의 옛적 그러던 생각에 피식하던 중...

버스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워버리던 중저음의 현음과 사람의 숨소리가 저절로 내귀에 '안착'되어버렸더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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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처음 듣는 곡이네? <바로크>고 <Bach>구나...

이 연주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제가 한때는 제가 아는 연주자인 한, 연주된-녹음된-음악을 들으면, 처음 듣는 곡일지라도 연주자를 맞추던 때가 있었죠..크흐!)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첼로 연주자중에서는 도저히 알아 맞출 수 없는 연주자더군요. 그러다가 음악에 "매몰"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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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반복되더군요. 바로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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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갑자기 가라앉아버리더군요.
나의 mind? emotion? 그리고 의식consciousness을 넘어선 pro-conciousness?

도대체 지금은 그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막막한...

그런 나의 내면이 "침잠"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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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내가 앉아있던 공간이 버스 안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선율속에 매몰되다 침잠되어 내가 나인줄 잊었습니다.
연주가 끝날때까지 내가 도대체 어느 지경으로 있었는 지 아무 기억이 안납니다.

기억나는 건...
연주후 아나운서가 말한 "샤프란"이란 단어와 "564번 아다지오"라는 그 두 단어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버스옆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더군요. 볼이 시리게 차갑다(서울 버스의 빵빵한 에어컨 덕에)는 사실을 깨달은 것 조차 564번이란 걸 계속 되뇌이며 외운 후 였으니까요. 작품번호를 외우면 무조건 찾을 수 있다는 소소한 상식과 기대 덕분에 그제야 현실로 '깜빡~!' 하고 돌아왔습니다.  버스는 한남대교를 달리기 시작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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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순간, 자신이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 부유하고 있는 '나'를 겪으신 적 있습니까?
저는 맞딱뜨리진 않았으니 "해리(Dissociation)"의 경험은 아닐 겁니다.

저는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 부유하는 나 자신을 "느껴본" 적은 있습니다.

나를 둘러싸던 시간과 공간이 멈춰버리는 그 순간을,
내가 사라져버리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다닐 샤프란(Daniil Shafran)의 Adagio, 바흐 작품번호(BWV) 564 입니다.

p.s. 감히 그의 연주를...wma로 변환하여,

기껏 컴용 스피커로나 듣도록 글을 올리는 게
샤프란에게 죄스럽고,
혹여 어렵게 시간내어 이 조잡한 글을 읽고 조악한 사운드로 듣게 만든 분들께도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