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s 2008. 12. 11. 08:30

Open Your Eyes(Abre Los Ojos) 오픈 유어 아이즈..."그땐 뭐가 그리 절실했을까?" (03/07/25)

Open Your Eyes (Abre los Ojos)

..."그땐 뭐가 그렇게 절실했을까?"

감독 :

Alejandro Amenabar

각본 :

Alejandro Amenabar, Mateo Gil

배우 : Eduardo Noriega (II) .... Cesar
Penelope Cruz .... Sofia
Chete Lera .... Antonio
Fele Martinez .... Pelayo
Najwa Nimri .... Nuria
Gerard Barray .... Duvernois (senor TV)
음악 : Alejandro Amenabar, Mariano Marin
제작 : Fernando Bovaira, Jose Luis Cuerda
촬영 : Hans Burman

기타 :

Spain 1997

 

## 반복되는 Deja vu로 시작되고 결국 긴 Jamais vu로 마치다

이 친구 세자르...참 꿈 많이 꿉니다. 영화의 결말을 다 본 뒤에 생각해도 이미 영화 초반에서 이 친구는 '원래 꿈을 많이 꾸던 친구'였어요. 게다가 영화끝까지 보고나면 영화에서 설명해준 전환점(또는 프로그램의 시작점)이 그다지 믿음직해지지 않습니다. 영화스토리상 그 설명을 믿긴해도 저는 감상이 갑자기 마구 확대되어버려 우리가 사는 삶 자체가 한낱 '조신의 꿈'이나 '장자의 꿈'같은 것에 정말 불과하지 않나..하는 한숨이 피식 나오기도 하더군요.

이 영화를 스릴러의 장르에 넣기도 하고 미스테리극에 넣기도 하지만(특히 감독의 전작이 떼시스Tesis,1995 이다 보니 다들 그런 관점으로들 봅니다만) 저는 이 영화를 다르게 봤습니다.

일단 이영화는 꿈과 정신의식에 대해 굉장히 놀랄만큼 능숙하게 다룹니다. 아메나바르가 히치콕에 열광하며 자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히치콕의 영화는 영화에 문외한인 의사가 보면 대단히들 놀랍니다. 우와 정신의학에 대해 저렇게 능숙하게 다루다니?-전문가 집단의 허를 찌르며 말이죠^^물론 영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의사라면 놀라지 않겠죠..왜냐면 그는 정신의학보다 히치콕 영화를 먼저 알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메나바르는 히치콕처럼 다사다난하게 정신분석학과 의식세계의 해석에 대해 다루진 않습니다. 딱~! 전의식(pro-conciousness)에서 잘 알려진 극히 일부의 꿈현상만을 다루고 그것도 꿈과 의식의 "착오(오류)"에 대한 것만 다룹니다. 데자부와 자마이스부는 일반인들이 너무나(도리어 과장되게) 잘 알고있는 상식이지요. 이것이 뇌의 '기억저장과 불러냄' 회로의 작동도중에 발생하는 소소한 오작동이라는 것도요. 제가 그간 봐았던 데자부에 관한 영화중에는 단연 이영화가 가장 잘 다룬 영화였다고 평하고 싶습니다..나머진 모두 일반인들의 순진하고 감상적인 바램(꾸밈)에 부합되도록 과장되고 유치하게 표현하기 일쑤였죠. 사실 데자부나 자마이스부는 그저 오류에 불과한 현상에 불과한게 맞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 대개는 거기에 꽤 환상과 감정을 꽤 품지만요...

그러나 분명 바로 이것; '오작동'에 주목해서 단지 이거 하나로 아메나바르Alejandro Amenabar와 마테오 길Mateo Gil은 시나리오와 영화한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영화가 무리스럽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 둘이 이 선을 끝까지 넘지 않고(오버없이) 견지했다는 것에 바로 그 그 대견함이 존재하지요.

게다가 이것 하나만을 '수단'(저는 이걸 '소재'로 썼다기보다는 '수단'으로만 썼다고 생각합니다)으로 써서였을수도 있지만 덕분에 부담없이 아주 노련하고 능숙하게 풀어나갑니다. 이들이 분명 정신분석에 대해 꽤 빠져봤었을 젊은이들일 텐데,,(그렇다면 다른 매혹적인 수단과 소재로 쓸게 많았을 텐데,,) 무리하지 않은 덕분에 25살짜리들이 쓴 스토리라고 생각하기 무서울 정도로 대단히 세련되고 능수능란한 진행과 화법을 보여줍니다.

자,,그럼 저는 왜 꿈과 정신세계를 이들이 '소재'가 아니라 '도구'나 '수단'으로 썼다고 볼까요?


## 20대의 현장에 서있던 감독과 스탭 그리고 배우들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 최고수준의 청춘백서

일단 한문장으로 제 결론을 말하자면 이영화는 정말 잘 만들어진 진정한 '청춘'영화입니다. '청춘영화'에 대하 우리가 가졌던 선입견없이 '청춘'이란 단어 그대로, "젊은이","젊은 시절","젊고도 미숙했던 시기"로 받아들여준다고 전제했을때 말입니다. 주인공 세자르에겐 그 나이에 겪고 통과하는 온갖(?) 감정이 난무합니다. 만사에 대한 무심함, 무료함... 그러다 진정한 사랑인것 처럼 여겨지는 만남과 그 설레임... 훼손또는 상실에 의한 고통, 소외감과 비애, 절실함... 때로는 잠시의 기쁨과 잠깐의 안온함... 회피하거나 부인했던 부성(아버지의 존재, 기존의 질서)을 문득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소소한 개인적 변화과정까지도 말이죠..제 말이 혼란스럽다구요? (아니 정말로 이 온갖 감정들이 이 영화속에 다 들어있다니깐요? 부글부글)

그렇죠.. 그 나이때 우리는 항상 부족했고 항상 불안정했습니다. 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니까요...게다가 그땐 그게 존재한다고 믿었으니까 진짜 더 엉망스럽죠^^;
그 분명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그것'(그게 그 무엇이든간에)을 제대로 믿지 못하겠을때의 혼돈과, 나름 진실이라 믿고 안주하고 싶었던 '그것'을 떨쳐내야한다고 깨닫는 것, 이 둘다 모두 너무나 힘들고 숨가쁘긴 마찬가집니다. 한편 떨쳐낸 거짓은 정말 거짓이었나? 또는 새로 만난 상황(돌파구라 믿은)은 과연 정말일까? 거짓이 아닌 걸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껍질을 깨고 다시 눈뜬 나는 정말 실존하는 나일까? 아~ 모든게 안타깝고 가쁘고 아프기만 합니다.

세자르가 마지막에 눈뜬 세상은 정말일까요? 다시 새로운 꿈(프로그램)일 수도 있어요...아니면 눈떠보니 1997년일수도 있지요?^^ (아~ 정말 잔인한 악취미입니다 그려~방안퉁수!.. 그래도 이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련한 세자르를 위해 한번쯤 걱정스레 의심해주지 않을까요?)

그 모든 욕망이 너무나 절실해서, 그래서 소중한 것 뿐이지, 실제가 아름답고 소중한건 아니죠.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그걸 찾아내려하고 내달리고 상처받고 버림받습니다. 바로 이것을 , 그 마음을 아메나바르는 너무나 뛰어나게 그렸습니다. 20대가 아니라면 그렇게 그려낼수 없었을겁니다. 한편 25살무렵에 이렇게나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다는게 대단한 재능인거죠. 저는 이 영화보다 20대의 감성의 핵심에서 그 혼란과 격정의 한가운데 서서, 녹여내고 표출시킨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20대를 다루고 20대의 주인공이 나온다고 다 청춘영화는 아니죠. 또한 청춘 영화를 표방해도 대개는 껍질뿐인 "회상"에 그치거나 "반추"에 불과합니다. (코폴라는 80년대에 무진장 노력했지만 결과는 우습습니다. 오히려 '페기수 결혼하다'가 훨씬 절절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몹시 가슴아팠답니다. 우린 왜 그리, 뭐가 그렇게 절실했고 그로인해 불안해했을까요?

(myidcat 2003/07/25)




* 리메이크작 바닐라 스카이보다 '건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하지만 제 생각엔 건조한게 아니라 바닐라스카이보다는 쉽게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거 아닐까요?^^;자신에게 쉽게 와닿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음흉"하게 표현하다니...요새 일부 영화관객 참 징허게 음흉합니다.
한편 헐리우드 식 문법과 설정이 아니면 오히려 와닿지 않는다니...뭐 그럴수도 있지만(제가 볼땐 그 '건조하다'라는 표현이 '익숙한 문법이 아니다'라는 것과 동의어로만 느껴졌습니.) 그러고도 자신이 꽤 영화를 잘 아는듯 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수 있다니!!!...하고 몹시 반감이 들더군요. 그냥 솔직하게 썼다면 전혀 비난할 게 못되죠. 하지만 '건조'운운하는 데서 그만 황당해져버렸습니다. 단순, 정직...영화를 진심으로 즐기기 위한 필수 요건입니다~토토처럼요..

* 주인공 세자르 역 노리에가Eduardo Noriega의 연기가 전 매우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보면 스테레오타입화되어 보여지기 쉬운 지극히 잘생긴 마스크이지만, 마치 그저 얘깃거리에 불과할것만 같은(거짓말 같이) 단순한 이유에 의한, 그러나 세상 최고의 고통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인생의(운명의) 고통을 잘 표현했죠.

얼굴 훼손된게 세상최고의 고통이라고 말하다니..너 참 얕다구요? 우와! 그땐 그게 정말 절대적이지 않나요? 일흔이 되어도 중요하지요..더구나 10대 20대때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니던가요? 나의 외모든 내가 빠져들 대상의 외모든...얼굴은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게 진짜 가식이고 가증이죠..

사람이 실제로 타자의 세상과 인생, 어려운 철학, 이데올로기, 또는 숭고한 신념, 사회적 계급 등의 거창한 이유로 치명적인 고통을 겪진 않잖아요? 오히려 우리는 그저 '소소한' 질투나 탐욕, 애증이나 애정 또는 실연, 배반, 상실이나 좌절에서 가슴이 불타오를듯하거나 죽을듯한 격정을 겪지요.
실은 거짓말같 은 단순한 이유인게 아니라,, 평소라면 절대 상상도 하지않을(안할) 이벤트인거죠. 하다못해 여러분의 얼굴에 큰 흉터가 있다면? ^^

* 위의 얼굴 예 말고도 20대적인 감수성을 단도직입적으로(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예가 많더군요
펠라요는 세자르의 잘생긴 얼굴이 몹시도 부럽고 배아픕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세자르의 가장 친한 친굽니다. )
소피아(Penelope Cruz역)는 추해진 그가 짜증나고 피하고 싶습니다.(그저 세자르의 염원과 상상속에서나, 구원 또는 도피의 여인이죠)
누리아(Najwa Nimri 역)는 묻습니다, '넌 도대체 언제 행복하냐'고...(그 나이 땐 '행복'이란 걸 모르죠. 그저 즐겁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나거나 그런 '기분'만 있을뿐인 법입니다. 세쟈르도 또한 아직 저도 절대 대답 못합니다.)

일반적인 영화적 문법이나 설정과는 별로 거리가 먼 직설법들입니다. 상투적인 영화적 미화가 없어요. 그리고 미국식 영화적 관습에서 교묘히 벗어나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엔 미국 메이져에서 만든 바닐라 스카이 Vanilla Sky,2001 는 결국 뚜껑따놓고 상온에서 하루이상 방치한 맥주같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머...먹을수는 있지만요..--;)

* 나이트 클럽의 화장실에서 세자르의 얼굴을 보고 비웃고 마구 지껄이고 가는 청년중 하나가 아메나바르랩니다.

* 영화를 안보신분들을 위해 한마디 : 그다지 무섭지 않지만 스릴러로서의 면모에도 전혀 손색없고 재미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소소한 삶의 단면 하나하나가, 일상에 대한 평범하기만한 의식들도 스릴러 장르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될수 있다는 면에서, 도리어 과장된(도식화된) 스릴러물보다 와닿을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광들에게 아메나바르는 "발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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