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s 2008. 12. 24. 08:30

비참한 상상..아니... '아픈 상상'

장한나 내한공연 덕분에 비발디 첼로 협주곡을 들었다. 실은 비발디에게 첼로협주곡이 있을거란 사실을 짐작조차 못했는 데, 역시나 성실하고 도전적인 연주가들 덕분에 '원래는 있던 사실'이 '내게도 드뎌?간신히? 사실'이 된 격이다.^^

잘 모르는 곡들이니까 공연전에 미리 접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장한나의 신보CD를 사서 들었고, 그래서 비발디도 좀 찾아보고.
그간 나는 비발디 팬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크조차도 실은 잘 모르는 편에 속한다. 내가 그나마 듣는 클래식들중에서조차 그러해왔다.

첨에 CD를 듣는 데, 거....여전히 바로크는 다 그게 그거 같더라. '아니 이 악보를 연주자들은 작품 번호별로 대체 어케 외워? 당췌 그게 그건데? 으악~!' 그랬다.--; 그래도 꾸역꾸역 나역시 반복해서 들었다. 그거 아는가?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되나니, 사랑하게 되면 이전에 보았던 것이 그때 보았던 것과는 다름이라.'는 격언... 이건 클래식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학습이나 적응이 필요한 수준의 문화예술 또는 학문, 인류가 이룩해온 그 성과, 그 어디에나 통용되는 격언인게다.

나 역시 반복반복을 거듭하며 듣던 그 어느 날, (물론 이 음악이 마냥 그저그렇다면 이짓을 내가 했을리도 없다.^^ 이 점은 참으로 분명히 해두고 싶다. 대여섯번 앨범을 통째로 들어보시면 안다. 클래식계의 또 다른 격언 ; '바로크는 대체 버릴게 없다!'라는 이 일갈이 진실로 가슴에 와닿는 다. 과연 버릴게 없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새어나온다.) RV400의 2악장 adagio가 딱 내가 좋아하던 바흐와 샤프란의 그 adagio(BWV 564)와 호흡과 분위기가 몹시도 유사하면서도 또다른 아름다움에 감탄하였고(게다가 장한나의 연주 스타일도 역시나 절제하는 맛이 몹시 대단하다는 사실도!) 그러다가 408번 협주곡(E flat RV408)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감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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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Antonio Vivaldi cello concertos,2008 中  track11 Cello Concerto in E flat RV408 2악장

장한나, Antonio Vivaldi cello concertos,2008 中  track06 Cello Concerto in A minor RV420 3악장

 

비발디는 신부(사제)였댄다. 그리고 그의 오케스트라는 그가 몸담은 수도원 및 고아원에서 보호되고 있던 여성들로 구성된 연주자들이었다고 한다. 비발디의 음악이 실내악 몇개외에는 근현대에 많이 묻힌 이유가 오케스트레이션 자체가 '앙상블'위주이고, 화려하거나 강렬한 '뽀인트'-흥행요소가 될만한-가 부족한 멜로디였기 때문이랜다. 그가 비슷한 세대의 바흐나 헨델과는 달리 작은 규모의 음악 위주로만 만들고, 강렬하거나 강한 연주 및 인상을 요하는 요소를 배제한 스타일로만 곡을 생산해낸 이유는, 그의 '취향'이나 개인적 성향탓도 있겠지만 그가 자신의 현실상황 속에서 연주하고 드러내보일 수 있었던 그의 직업적(?)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즉 수도원에서 보호되어(한편 이것은 '갖혀지내야만 하는'과 동의어도 된다) 지내는 여성들로 구성된 소규모 연주단이 연주할것을 항시 전제로 두고 그가 주로 작업을 해야 했다는 말인게다.

이 사실을 알고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그리고 첼로 하나가 엄연히 솔로이스트이고 소규모 오케스트라와 1:1의 대등한 형식으로 연주를 하는 '협주곡'이란 생각을 할 때, 언뜻 머리를 후려치는 생각하나....아~ 당시에도 그 솔로이스트는 '여자'였겠구나? 아마도 비발디가 이끌던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연주를 잘하는 첼리스트였겠지..? 저런 연주를 하려면 당연히 악보도 볼 줄 알고 글도 읽을 줄 알았을거야...당연히 '교육받은' 여성일 수밖에....그런데 그녀의 출신은 미혼모의 자식이거나 집안에서 버려진 여자아이겠네? (이때 중요한 점은 그냥 버려진 수준이 아니라, 그녀들을 버린 집안도 미천했을 게다. 당시에 명문가 여식인데 사연이 있어 굳이 수도원에 보내 평생을 갖혀 지내게 하는 경우, 그 비천한 '연주가'를 시킬리야 만무했을 테니)

그 시대에 길에서 구걸하고 몸파는 여자 다음으로 가장 비천한 계급에 속했을 여인들이 연주했을 음악이 바로 비발디였다는 거...

버려진 여자아이들로 모아져서, 게중 선택되고, 신의 이름아래 격리 및 보호되면서, 음악을 위해서든 어떤 목적에서든 어쨋건 교육을 받고 (구텐베르크의 출판물 성서가 파급되었다 한들, 원래는 소외시켰을 하층 계급의 여성들인 데) 글을 알았고, 그리고 이런 선율을 굳이 음미해야만 하고 본인을 그 음율에 합일화시켜가며 연주를 해냈어야 할 그들...

그들을 막상 상상하니까 너무 아프고 아픈거다.
이 상상이 비발디의 빼어난 곡을 더욱 절창으로 몰아가고, 또 비발디의 빼어난 작품때문에 더욱 아픈 상상으로 몰아간다.

그들중에 누군가는 지금의 장한나처럼 훌륭했을거다.
(물론 장한나가 비발디를 택한 의도도, 알고보면 나의 이런 상상과 무관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녀의 해석과 연주는 되려 절제된 편이지만 실은 의도는 다분히 '공격적'이지 않을까?)

비발디가 아무리 그 시대와 그 세계에 속했을 사람이라 가정한들,,또는 음악은 좀 멋지지만 생활인으로서 알고보면 좀 그저그런 사람이었을지 모른다는 무한무식상상까정 동원한다 해도, 솔로이스트가 저토록 날아오르는 연주를 해야하는 작곡을 했다는 건 그만한 역량이 되는 '소녀' 또는 '여성 연주자'를 보유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과연 그가 그녀를 바라볼 때, 어떤 심정이었을 까? 

글을 알고 음악을 알았기에 그녀들은 그 어떤 환희와 비탄속에서 갖힌 채, 생을 느끼고 살아나가야만 했을 까? 

나같은 일개 범인도 이러한 상상도를 펼칠진 대, 그 음악을 연주한 그녀가 전혀 이런 의도나 야심(정치적? 철학적?)이 없었을 까?
장한나 정도라면 과연 외치고 싶었을 게다.

감춰야했던 환희와 절정, 범인은 평생 알지도 못할 끝없는 비상...
그리고 숨은 고통과 숨겨야만 하는 비탄은...
바로 이런 거라고!